[그림2] 해양산업의 전임종사자
[그림2] 해양산업의 전임종사자

2019년 8월 25일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Summit)’에 참석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수상은 별도의 양국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산 옥수수 250만 톤을 일본이 구매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무역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금지시키자 일본이 중국대신 미국산 옥수수를 구매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중국 옥수수 공급망’이 ‘미국-일본 공급망’으로 이동하게 되며, 당연히 해상운송망도 이동하게 될 것이다.


옥수수 250만 톤은 파나막스급 벌크선 1척의 50항차 물동량이다. 세부사항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나 대략 1,000억원 내외의 운임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물동량이다. 미국과 중국간 곡물운송시장에 참여해왔던 해운회사 입장에서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반면에 미국-일본 곡물운송시장에서 활동하던 해운회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수송망 이동이 실제로 실현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겨우 1일 후인 8월 26일에는 트럼프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협상회의가 재개될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파나막스급 벌크선 50항차분의 옥수수 수송망은 ‘미국-중국 항로’로 다시 복귀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협상회의의 결과에 따라서는 수송망의 복귀가 이루어질 수도 있고 ‘미국-일본 항로’로 굳어질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두 항로 모두 실현될 수도 있다.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당선되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미국 농부들의 옥수수가 최대한 많이 수출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옥수수를 구매하라고 우겨댈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미국-한국 옥수수 수송항로’마저 갑자기 조성될 수도 있다. 예측불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한국 대통령에게도 왜 한국만 옥수수를 구매하지 않느냐?고 윽박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미국의 옥수수 수출이 당분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가능성이 매우 낮기는 하지만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한국도 모두 미국산 옥수수 구매를 거절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해운회사들에게 가장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아무것도 고정시킬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제무역체제의 재편에 따라 국제 해상수송망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벌크화물 수송망뿐만 아니다. 컨테이너화물이나 탱커화물의 수송망 모두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제조업 관련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고 원유, 정제유, 가스류 등의 공급망도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애플과 중국의 화웨이가 미중갈등을 우회하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해가고 있다. 최근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과 일본간의 갈등으로 삼성과 일본의 제조기업들도 공급망 개편을 시작했다. 국제무역기구(WTO)체제 출범이후 확산되어온 글로벌 분업체제는 국제공급망을 지속적으로 확충시켜 주었다. 해운기업에게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 온 것이다. 특히 ‘기술(미국)-소재(일본)-반도체 및 디스플레이(한국)’의 공급망 발달은 세계 교역시장과 화물운송시장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그런데 이 공급망의 재편이 시작된 것이다. 유럽에서도 공급망의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영국의 EU탈퇴 시한이 금년 10월 31일이다. 그리고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는 이탈리아의 정치경제상황도 EU탈퇴를 초래할 수 있다. EU단일시장체제가 심하게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미국, 아시아, 유럽 등에서 공급망을 흔들어대는 초유의 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고조는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간단히 말해서 국제문제가 관리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국제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국가들간의 관계를 근간으로 해서 작동되고 있다. 1990년 소련의 붕괴 이후 중국의 부상과 유로존 형성 등 새로운 변수가 무난하게 기존시스템에 흡수됨으로써 미국, 중국, EU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 해운시장은 급성장하였다. 그러나 중국시장의 역할과 중국 정부의 야망을 잘못 인식한 미국과 유럽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함으로써 글로벌 거버넌스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시장의 중단없는 성장을 과신했던 미국과 EU의 자본시장이 폭발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다. 이 결과 미국과 EU는 10년이 넘도록 비상사태에서 국가경제를 운용해야 했다. 이 와중에 그동안 글로벌시스템에 온순한 이미지로 들어왔던 중국이 ‘제조업 2025’라는 깃발을 만들어 ‘일대일로’라는 ‘글로벌 중국공급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과 지구촌 전체에 중국만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욕을 드러낸 것이다. 선진국의 하청공장이 아니라 글로벌 중심국가 실현이라는 ‘새로운 중화사상’을 전파하겠다는 속내이다. 이에 미국이 그동안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가는 듯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흔들고 나섰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에 ‘동조하는 나라가 동맹이고,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동맹이 아니다’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양국의 동맹 확인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국가관계가 모두 불안정하게 변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 미국과 일본의 갈등, 미국과 EU의 갈등, 미국과 한국의 갈등, 한국과 중국의 갈등 등 거의 모든 국제관계가 요동치고 있으며 그 여파로 다국적 기업들의 국제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해운업계로서는 국제공급망 재편 자체가 당혹스러운 것은 아니다. 세계경제 성장과정에서 국제공급망의 이동은 주기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해상운송망의 이동에 대한 해운회사들의 대응력도 높은 수준으로 발달해왔다. 공급망의 이동이 신흥국가의 부상추세에 맞추어 나타났기 때문에 해운회사들의 예견이 가능했다. 진행방향과 진행속도 또한 안정적이어서 비교적 쉽게 적응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급망의 개편은 그 원인이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정치, 군사, 및 세력다툼 차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개편진행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이어서 적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진행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진행방향도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물운송시장에서는 당연히 적응하기 어렵고, 장기운송계약도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는 고정된 조직편제로는 공급망 재편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적응하지 못하면 고객을 잃게 되고, 투자도 부실화되며, 시장의 신뢰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공급망 변화를 융통성있게 관리할 수 있는 ‘공급망 비상관리팀’을 운영해야 한다. 이 비상관리팀은 구성은 쉬워도 성공적 가동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전 같은 연습을 수없이 반복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따라서 사태가 벌어진 다음에 구성하는 것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진해운 도산시 화주들의 자기짐 찾기 소동을 떠올리면 비상관리팀을 언제 구성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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