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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타실의 경제학(11)

기사승인 [543호] 2018.11.30  11: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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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해운을 위한 제언 : 해운산업 학습체계 구축하자

 

   
고병욱
경제학 박사(http://blog.daum.net/valiance)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들어가며
통상적으로 시장은 효율적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자가 선택함으로써 경쟁력이 떨어진 기업을 도태시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증진할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이 떨어져 도태될 운명의 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이들이 이러한 경제의 효율성 달성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한국 해운의 세계적 위상도 이와 관련이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선도 선사들은 우리 정부가 해운산업을 지원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으며,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은 조선산업 지원과 함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대해서도 WTO 규범에 어긋나는 것으로 공격하고 있다. 즉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도태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이러한 비판과 공격의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우리 해운산업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산업 학습체계’라는 관점을 소개하고, 이 관점에 기초해 한국 해운산업의 학습체계 구축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학습의 중요성
사실 학습(learning)이란 용어는 교육학(Education)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경제학에서는 생소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해운산업 학습체계 구축’이라고 하면, 해양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커리큘럼을 새롭게 개편하자는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지하에서 흐르는 강과 같이, 경제학에서 학습이란 개념은 개인의 발전, 기업의 경쟁력 제고, 국부의 확대를 설명함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은연중에 해오고 있었으며, 미래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이 같은 주장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의 「창조적 학습사회」(김민주·이엽 옮김), 2015를 참조하기 바란다). 사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학습혁명으로도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발전에 있어 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이래로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고, 이러한 새로운 지식을 경제에 적용하면서 산업혁명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즉 자연에 대한 학습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무지無知에 대한 자각이 요구된다. 유럽에서 계몽주의 운동의 핵심 기저에는 바로 인간의 무지에 대한 인정認定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앎에 대해 겸손해질 때, 학습을 통해 하나 하나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갈 수 있는 시작점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해운산업에서도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이 같은 학습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30여 년 전에는(1984년) 해운산업 합리화라는 극단적 조치와 함께 한국해운기술원(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초기 명칭)을 설립해 글로벌 해운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산업 학습체계 구축을 도모했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대기업에게 강제적으로 적용된 부채비율 200% 규제로 해운기업이 우량 자산을 매각하는 우愚를 범한 것도 해운의 특수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머스크 등의 선도선사가 대형화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 위기에서 탈출하고 있지 못한 것도 급변하는 해운산업 여건에 대한 학습과 그에 따른 전략이 부재한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각 단위별 지식의 분포>

학습의 방법
학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질문은 인류 역사 속에서 철학자들이 ‘우리가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즉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수천 년 동안 제기했던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 필자는 여기서 20세기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Karl Popper)의 설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포퍼는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성장한다고 주장한다.
P1  → TT → EE → P2 
여기서 P1은 문제상황 1, TT는 잠정적인 이론, EE는 오류제거, P2은 문제상황 2.
 

즉 P1이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TT라는 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검증하면서 EE라는 오류를 제거하면, 우리는 새로운 문제 P2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포퍼의 이러한 지식 획득의 과정은 과학자 개인 뿐 아니라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아울러 기업 또는 조직 차원에서 이러한 지식 획득이 가능하거나, 국가 또는 세계 경제 차원에서 이러한 지식 획득 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각 단위별 지식의 분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조직(기업)은 소속된 개인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조직이 필요한 지식을 만들고(학습하고), 또 사회(국가)는 각 개인 및 조직이 유기적으로 작용해 사회가 필요한 학습을 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각 단위들은 어떻게 지식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일까?
지식의 창조와 공유 과정은 보이솟(Boisot)의 사회적 학습 사이클(Social Learning Cycle) 이론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먼저 S1의 상황에서 우리는 구조화되지 않은 문제에 직면한다. 이때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주어진 다양한 자료(data)를 구분하고(codification)하고 이들 속에 잠재된 패턴을 찾기(abstraction) 위해 노력한다. 즉 구조화된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국면에서 사용되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포퍼의 과학적 지식의 확보 방법이다. 즉 문제를 풀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을 현실에 적용해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화된 지식은 유일하게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문제를 푸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지식이 가능하다.
 

   

<사회적 학습 사이클>

자료:Boisot의 사회적 학습 사이클 이론을 수정*번역함

이렇게 구조화되지 않은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구조화된 지식이 도출되면(S2), 이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직과 사회의 구성원에게 확산된다(S3). 이러한 확산과정을 통해 상위 단위(조직, 사회)의 지식 역량이 크게 향상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렇게 확산된 지식이 다른 사용자들에 의해 다른 부문에서 적용되면서 조직과 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S4). 그러나 바로 이러한 구조화된 지식을 구조화되지 못한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 상황이 조성된다. 즉 포퍼의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인식과정에서는 기존 지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 나타나고, 동시에 새로운 이해를 위한 기회요인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사이클이 끝나면, 개인, 조직, 사회는 새로운 문제를 푸는 상황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 물론 실제의 학습과정은 이러한 일직선을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다양한 상황들이 매우 복잡하게 엮여 진행하게 된다.
 

시장의 경쟁과 사회적 학습 알고리즘
필자는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에 의해 선택되는 경제적 삶을 사회적 학습 알고리즘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우선 기업의 차원에서 사회적 학습 알고리즘을 생각해보자.
기업들은 저마다의 학습 알고리즘을 가지고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고객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이를 제공하기 위한 생산 방법은 무엇인지, 필요한 생산요소는 어떻게 구할 것인지, 그리고 미래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어 지금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즉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수많은 학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과정은 최고경영자, 중간관리자, 일선 근로자들이 체계화해서 이해하고 있는지(문서화해서 알고 있는 경우) 여부와 무관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들은 이러한 기업의 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에게 가치 있는 상품을 수용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하는 기업의 상품을 선택한다. 이러한 고객의 평가가 해당 기업의 생존과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시장에서 머스크가 1위의 위치를 점하게 된 것도 이러한 사회적 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머스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급속히 나타난 공급과잉의 저시황 국면을 2011년 Triple-E 초대형선 발주라는 전략으로 돌파했다. 즉 서비스 차별화가 쉽지 않은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 활용 전략을 선제적으로 추진해 경쟁선사 대비 월등한 비용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서비스 공정 혁신과 내부 구조조정을 통해 이러한 비용 경쟁력과 서비스 품질 고도화를 배가시킨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고객의 선택을 받게 되었고, 머스크에게 세계 1위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즉 머스크의 기업 학습 알고리즘이 경쟁 선사의 그것 보다 우월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업 성공의 이면에는 CEO, 중간 관리자, 일선 근로자 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머스크의 학습 알고리즘은 덴마크 경제와의 소통 속에서 가능했다. 머스크는 Triple-E 선박의 발주를 위해 자국의 선박 엔진 기술과 수출금융의 지원을 받았다. 즉 머크스 경쟁력은 머스크만의 성과가 아니라, 유관 산업과의 사회적 학습 알고리즘을 통한 협력과 이를 촉진한 금융지원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나라 해운산업 학습체계 구축방향
우리는 해운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일선에서 치열하게 사업을 하는 종사자들의 뜨거운 열정,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4월 발표된 ‘해운재건 5개년 계획’과 7월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라는 우리 사회의 지원을 생각하면, 우리는 해운산업 재건을 위한 충분한 에너지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제는 어떻게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해운산업을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각 계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우리 해운산업이 산업 학습체계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학습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우리의 당면한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대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는 산업계, 정부, 연구소의 역할을 간단하게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산업계는 해운산업의 고객(특히 화주)의 관점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해운기업의 미션을 확고히 해야 한다. 해운산업에서는 “짧은 호황, 긴 불황”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이러한 오도誤導된 명제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해운시장의 큰 변동성은 선사가 호황기에 화주의 손실을 발판삼아 수익을 거두는 기회의 장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화주의 물류비용의 변동성을 선사가 전문적인 위험관리기법을 통해(예들 들어, 해상운임파생상품 또는 연료비 헤징수단 등을 통해) 해소해 주면서, 고품질의 물류서비스를 화주에게 제공해야 한다. 즉 해운기업은 화주기업이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물류 파트너 기업이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해운기업의 미션 확립은 순차적으로 새로운 파트너십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소는 해상물류비 절감을 위해 운항정보를 가지고 있는 선사와 협력해, 연료저감 기술의 개발에 연구개발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해운 유관산업(선박관리업, 물류주선업 등)도 업무를 효율화하고 서비스 품질을 개선해 화주의 물류서비스 만족도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션 확립과 그에 따른 혁신 전략 수행의 구체적 과정은 앞서 언급한 사회적 학습 알고리즘의 논리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정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우선 정부는 해운산업을 위한 산업정책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미 세계 해운산업은 해운 산업정책의 각축장이 되었다(필자와 KMI 동료들이 발표한 「산업정책적 관점에서의 주요국 해운정책 분석 및 정책방향 연구」, 2017을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기존에 강조되지 않았던 정부의 역할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해운 산업정책의 실행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해운 산업정책은 해양수산부만의 소관 영역이 아니다. 범부처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지난 11월 23일 해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해양수산부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차관급 공무원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해운산업발전위원회’를 설치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위원회를 중심으로 해운 산업정책의 효과적인 실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으로 (가칭)‘해운산업 진단센터’의 설치가 필요하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산업정책의 수행을 위해서는 산업의 여건 변화와 그에 상응하는 정책대응을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의 집행과 평가의 순환 체계가 작동해야 정부 차원의 산업 학습 알고리즘이 기능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상황 적합적인 정책의 수립과 실행이 가능해 질 것이다.

셋째,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같은 정부출연 연구소도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산업 전망대회를 효과적으로 기획해 산업계 전반의 종사자가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고, 인적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계와 정부가 각자의 사업 전략과 정책을 효과적으로 입안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식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정부출연 연구소의 역할은 해운산업 학습 알고리즘이 역동적으로 기능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이러한 제안이 실현되어 우리 해운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때, 우리는 시장에서 선택을 받아 글로벌 경제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는 한국 해운산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종사자들 또한 삶을 영위하고 보람된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 앞서 임금에게 “신臣은 아직 열두 척의 전선戰船이 있다”라고 말씀했다. 우리 해운은 여전히 세계 5위 해운 대국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소실하지 않았다. 다만, 한진해운 사태로 상징되는 일시적 위기를 맞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해운산업이 새롭게 학습체계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발전 역량을 확보하고, 우리 경제의 대동맥으로서 역할을 다 해 나가는 것을 기대하며 졸고를 마치고자 한다.

고병욱 komares@chol.com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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