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인원·고박상태·소화설비 등 꼼꼼히 살펴…“안전이 최우선”

세월호 이후 ‘해사안전감독관’ 도입 3년차

2인 1조 승선, 단순 지적보다 개선점 제시

선사 안전관리시스템 정착에 도움


4월 19일 오전 7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은 이른 아침임에도 승선을 기다리는 여행객, 군인, 도서민들로 조금씩 활기를 띄고 있었다. 기자는 이날 인천-백령도를 오가는 ‘하모니플라워’호에 올라 해사안전감독관의 안전점검에 동행하기로 했다. 해사안전감독관은 4년전 세월호 참사 이후 도입된 제도로 총 18명의 감독관들이 전국 연안여객선을 지도감독하고 있다. 세월호가 출항했던 인천항에는 현재 2명의 감독관이 배치돼있다.

약국에 들어가 멀미약을 사 마신 후 전날 통화한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의 윤영기 해사안전감독관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윤 감독관은 1981년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현대상선 항해사와 선장, 해영선박 안전품질팀장 등을 지내며 3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선박안전 전문가다. 2015년부터 목포에서 해사안전감독관으로 일하다 올 초 인천에 부임했다.

윤 감독관은 자기가 작업복을 입고 있어 눈에 띌 것이라 했다. 터미널 매표소 앞에서 안전모를 쓴 윤영기 해사안전감독관과 신규 부임한 서호선 감독관 일행을 만났다. 하모니플라워호의 선사인 에이치해운에서는 해사부 노기환 부장이 동행했다. 일행은 매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예매해둔 표를 찾았다. 기자는 비상연락망으로 가족의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신분증과 승선권을 제시한 후 개찰구를 빠져나오자 ‘인천-백령’이 쓰여진 노란색의 하모니플라워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개가 심하면 출항이 취소될 수 있어 내심 걱정했는데 하늘을 보니 맑고 선명한 봄날씨다. 현재 인천항 연안여객항로는 14개 노선에서 19척의 여객선이 운항중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끊긴 인천-제주간 항로에 새 사업자가 선정되면 내년부터 운항 선박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선박입구에서도 승무원이 승객들의 신분증과 승선권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배에 들어서자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객실과 내부시설은 쾌적하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1층에는 프리미엄급 좌석도 설치돼 있었다. 제복을 갖춰 입은 승무원들이 출항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월호 이후 제복 착용이 의무화되면서 승객들의 선원을 대하는 매너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노기환 부장이 귀띔했다.

감독관 일행은 먼저 브릿지로 이동했다. 마침 객실 곳곳에 설치된 TV화면에서는 비상탈출에 대한 대피요령과 구명조끼 착용방법 등의 안내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앞에서는 승무원 한명이 구명조끼를 입는 방법을 시연했다. 구명조끼 보관함과 소화기, 비상문 근처에 자신의 짐가방을 놓은 승객들은 승무원의 주의를 받고서야 짐을 치웠다.

 

 
 

출항 전 안전점검, 항해장비 체크, 운항 모니터링

하모니플라워호는 인천과 백령도를 매일 3시간 30분에 오가는 초고속 카페리선이다. 총톤수 2,000톤급으로 최대속도는 40노트, 최대 승선인원은 556명이며, 차량은 68대를 실을 수 있다. 이 배를 타고 지난해 인천과 백령도를 오간 승객은 약 23만명이다. 지난 2012년 7월 취항해 현재 선령은 20년다. 세월호 이후 여객선 선령 기준이 최대 30년에서 25년으로 강화되면서 선박의 안전관리는 더욱 엄격해졌다.

“선장님, 탑승인원이 몇 명입니까. (중략) 선장님, 우리 신경 쓰지 마시고 나가실 때는 잘 나가십시오.” (윤 감독관)

“승객정원 289명, 여기 있습니다. 차량은 17대이고... (중략) 항해사들은 고박상태나 기타상태들 제대로 진행됐는지 스탠바이 하세요.” (문현철 선장)

“항해사는 빨리 출항스테이션으로 올라오도록 하십시오. (중략) 항해사 앉으세요. 항해당직 수칙을 잘 지켜달라는 것이 중점 지도사항입니다. (윤 감독관)”

오전 7시 50분, 출항 직전 브릿지에는 문현철 선장과 견습선장, 기관장, 2등 항해사가 모였고 무전기 신호들이 오가며 긴장감이 맴돌았다. 여러 대의 CCTV 화면에는 기관실 등 선내 주요 공간이 모니터링되고 있었다. 윤 감독관은 출항 전 승선인원과 화물적재 톤수를 꼼꼼히 살피고 출항 전 안전점검 보고서를 확인했다. 이날 배에 탑승한 인원은 289명, 차량은 17대다. 세월호 이후 여객과 화물의 전산발권으로 관리가 철저해졌다는 설명이다.

“운항관리 규정 한번 보여주세요”

안전 수칙 매뉴얼을 강조한 윤 감독관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했다. VDR(선박항해기록장치) 등 항해장비들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비상탈출 도면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아까부터 배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멀리 인천대교가 보였다. 윤 감독관은 선장과 항해사가 운항에 집중하도록 간간히 코멘트를 주었다.

“비상탈출 동선 한눈에 들어오게 표시해야”

감독관들은 비상탈출 도면을 바탕으로 하여 실제 객실과 복도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비상상황시 승객들이 한 구역으로 쏠리지 않도록 구역 분리 표시를 눈에 확 띄게 할 것을 요구했다.

“객실 의자 밑 구명조끼도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는 게 좋고요. 비상통로 루트도 색깔별, 구획별로 표시를 추가보완하면 좋겠습니다.”

화장실에도 들어가 관리상태 및 청결함을 확인했다. 출입통제구역에 디지털 도어락이 설치돼 있는 것은 좋은 평을 받았다.

2등 항해사와 함께 화물칸으로 나가 화물 적재 및 고정상태 등을 점검했다. 초쾌속선 답게 소금기 짙은 매서운 바닷바람이 온 몸을 휘감았다. 감독관들은 차량의 고박상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트럭 한대의 고박 밴드가 꼬여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차량 고박은 가능하면 너무 길지 않게, 크로스돼지 않게, 차를 제 위치에 딱 놓아줘야 합니다. 규정에 맞게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하라는 겁니다.”

소화 및 안전설비들이 제 위치에 잘 있는지, 비상상황시 쉽게 운용할 수 있게 주위 정리가 잘 되어있는지도 살폈다. 몇몇 탱크 뚜껑이 제대로 닫혀져 있지 않아 주의를 주었다.

“통행로 부근에 소화장비가 있으면 표시를 더 눈에 띄게 해주고요. 해치 잠금 표시를 잘 하고, 사용 후 제대로 잘 닫도록 해야 합니다. C/O(Closed/Open)로 하지 말고, 잠금/열림 표시로 해야 해요.”

기관실에 들어가 화재장비를 살폈다.

“가연성 물질이 있으면 안 됩니다. 불필요한 것들은 다 치우고, 꼭 필요한 것들은 가연성 물질 용기에 보관하도록 지도해주세요.”

“선사 안전관리 시스템 정착에 큰 도움”

“해사안전감독관이 승선하여 지적을 위한 검사가 아니라 개선방향을 제시해주니 선사 입장에서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에이치해운 노기환 부장)

에이치해운 노기환 부장은 세월호 이후 신설된 해사안전감독관 제도가 여객선사의 안전관리 시스템 정착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잦은 점검으로 인한 업무상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선사들의 안전관리경영 뿐 아니라 여객의 안전의식 개선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회사 차원에서도 본선의 애로점이나 지적사항, 승무원 근로조건 등 선박안전을 위한 최우선의 지원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해사안전감독관들이 승무 및 선박경력이 많은 전문가들인 만큼 그들의 안전에 관한 직언이 경영층에 피부로 와 닿으면서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 감독관도 해사안전감독관으로 활동하면서 선박의 체계적인 안전운항 뿐 아니라 승무원들의 근무여건 측면에서 개선과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해수부는 해사안전감독관 제도 평가를 통해 반복적인 점검 시행으로 선원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매너리즘이 조성된다는 우려점을 인지하고, 앞으로 결함지적 위주보다 안전관리 시스템 감독에 주안점을 준다는 방향을 세웠다.

고박장비 및 소화설비 등 정리정돈 권고

다시 브릿지로 돌아와 하모니플라워호의 검사 총평을 들었다. 윤 감독관은 “지적사항은 없지만 권고사항은 있다”고 운을 떼었다. “카데크는 전반적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정리정돈이 필요합니다. 고박장비도 제자리에 놔주고, 사람이 다니는 통로이지 않습니까. 소화설비도 안전장비 주위에 절대 다른 것을 놓으면 안 됩니다. 깔끔하게, 에어리어 표시도 추가로 하고요. (중략) 예방이 중요합니다. 항해 마치면 바깥의 구명설비도 보고 돌아올 때 서류나 운영체제를 같이 챙겨봅시다. 점검은 여기까지. 혹시 의견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노부장과 항해사들의 얼굴에서 마치 시험을 마친 듯 한 안도감이 엿보였다.

오전 11시 30분, 브릿지 창문 밖으로 멀리 백령도가 보인다. 선내 안전점검에 집중하는 사이 3시간 30분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갑자기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온다. 창밖으로 배가 접안하자 화물을 내리기 위해 대기 중인 항운노조 근로자들이 보였다. 게이트가 내려지자 배에 있던 차량들이 빠져나가고 뒤따라 승객들이 여행지 혹은 일상으로 무심히 돌아갔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