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보다는 자국선사간 합병이라는 틀을 통하여 자국선사가
가지고 있는 화주의 유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일본해운업 구조조정 약사略史
제2차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진전되고 자원 수입과 공산품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일본해운업도 성장괘도에 접어들었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중소업체가 난립, 저운임으로 인한 자국선사끼리의 과당경쟁에 노출되었다. 이에 반하여 미군전시표준선을 헐값으로 불하받은 그리스 선주와 유럽선사는 상대적으로 윤택한 재무상황으로 일본선사들은 항상 시장에서 을의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경제성있는 우량선박을 확보하지 못하고 고비용의 이자를 부담하면서  해운경기의 변동에 적절한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일본해운기업의 집단 도산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일본 정부는 해운산업이 소득 2배 증가라는 경제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산업이라는 명목을 가지고, 일본해운산업이 외국해운사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1963년 해운재건 2법을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해운사는 니혼유센, 쇼와해운, 쇼센미츠이, 쟈판라인, 야마시타신니혼기선, 카와사키기선의 6사체제로 일본해운사를 통합하는 해운집약정책을 1964년 실시하였다. 해운집약의 핵심은
 

1) 정기선, 부정기선의 사업부문과 보유 선종의 다양화를 통한 해운경기 변동에 따른 위험분산
2) 보유선박 규모의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
3) 대형선사를 중심으로 한 운항선사와 소형 선주가 중심이 된 소유선사로 운항과 소유의 분리를 통한 재무위험의 분산
4) 국내의 대형화주와 연계된 장기운송계약을 통한 안정경영기반의 확보
5) 국내 조선소의 신조발주와 연계된 국책은행의 장기우량 금융지원이라는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해운집약으로 일본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장기안정경영의 틀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해운집약정책이 도전을 받은 것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컨테이너수송의 개시와 1980년 시작된 해운산업의 규제완화로 인한 해운동맹의 약화로 인한 대량수송과 운임저하로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선박과 항만의 대형화, 해운기업의 통합과 재편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경제는 1980년대 버블경기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로 엔고가 진행되면서 일본해운의 가격경쟁력이 저하하였고 그 결과, 해운집약정책에 참여하지 않고 일본정부의 해운정책의 틀 밖에서 활동하던 부정기선사인 산코기선의 도산으로 이어졌다.
6사체제도 1989년에는 쟈판라인과 야마시타신니혼기선이 통합한 나빅스라인이 출범하면서 니혼유센, 쇼와해운, 쇼센미츠이, 가와사키기선의 5사로 집약되었다. 그리고 1990년에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기업은 과잉부채, 과도한 다각화, 부동산과 금융산업의 부실로 인하여 많은 산업에서 구조조정이 실시되었다. 그 가운데 해운업도 1990년도에 재편이 진행되면서 업계 1위 니혼유센이 쇼와해운과 통합, 쇼센미츠이는 나빅스라인과 통합하여, 일본 정기선사는 니혼유센, 쇼센미츠이, 카와사키해운의 3사체제가 되었다.

세계 정기선업계의 얼라이언스체제가 확고해지면서 일본선사들도 네크워크의 글로벌화를 위하여 니혼유센은 그랜드얼라이언스, 카와사키기선이 CKYHE얼라이언스, 쇼센미츠이는 뉴월드얼라이언스에 참여하였다. 1990년대 많은 일본의 산업이 불량채권처리를 잘 못하여 구조조정과 글로벌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일본해운업은 비교적 조기에 업계재편을 실시한 결과, 2000년 이후 중국특수로 불리는 해운시장의 활황에 따른 낙수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일본의 정기선 해운 구조조정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일본 정기선사의 구조조정에서 가장 우선시 고려된 것은 크게 1) 화주에 대한 신뢰를 지키면서 자국선사의 시장점유율 유지가 가능하도록 할 것 2)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효과와 재무체질 강화 3) 해운이나 조선의 독립적인 차원이 아닌 해운, 조선, 선박금융, 선박기자재산업 등 해사클러스터차원에서 접근한 문제 해결이라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화주에 대한 신뢰를 지키면서 자국선사의 시장점유율 유지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산보다는 자국선사간 합병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1964년 실시된 해운집약도, 1989년 실시된 나빅스라인의 출범도, 1998년과 1999년 실시된 니혼유센의 쇼와해운합병도, 쇼센미츠이의 니빅스라인합병도 모두 청산보다는 자국선사간 합병이라는 틀을 통하여 자국선사가 가지고 있는 화주의 유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세계 각국의 주요 정기선사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세계 주요정기선사가 청산으로 없어진 사례는 1872년 설립된 미국의 USL이 1987년 도산, 2001년 우리나라의 조양상선이 도산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흡수합병이나 통합이었다.

한진해운 사태에서 보듯이 정기선사의 퇴출은 글로벌생산, 글로벌조달, 글로벌소비시스템이 일반화된 오늘날은 수많은 화주산업의 공급사슬 절단이라는 예기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고 우량화주의 이탈은 자국의 타 선사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일본정기선사의 구조조정은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와 재무체질 강화를 고려한 구조조정이었다는 점이다. 보유선종의 다각화를 고려하여 정기선부문이 강한 쇼센미츠이와 부정기선부문이 강한 나빅스라인의 통합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합병으로 인한 부채비율상승이라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사전에 감자를 실시하고 정책금융기관의 적극적인 후원이 이루어졌다.

세 번째로 해사클러스터 차원에서 접근한 구조조정이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사례로는 2015년 9월 부정기선사인 제일중앙기선의 도산과 부활사례이다. 세계적인 해운불황으로 인한 어려움으로 대주주였던 쇼센미츠이는 300억엔을 지원하였지만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추가지원을 거부하자 동사는 4000억엔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산하였다. 동사를 살리기 위하여 에히메현의 이마바리를 중심으로 한 선주, 조선소 등 14개사로 구성된 ‘해사클러스터’라는 법인이 출자하였다. 해외의 펀드가 인수하여 시장을 교란하기 보다는 일본의 선주와 조선소가 직접 지원하는 것이 시너지효과가 크다고 본 것이다. 즉 조선소, 선주, 대형운항사가 공생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세계 어느 나라도 정기선사를 청산으로 정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USC도산과 우리나라의 조양상선의 도산에서 얻은 교훈을 살리지 못하고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그리고 청산이라는 길을 걷게 된다면 우리 무역산업은 값비싼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또,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물류중심국가정책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무리한 청산보다는 양사체제를 유지하면서 우리나라 화주에게 경쟁을 통한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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